아쉬운 경기력 속에 조지아와 무승부를 거둔 대표팀
축구에는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전술들이 즐비하다. 4-3-3, 4-4-2, 4-2-3-1, 3-5-2, 3-4-3 등 여러 가지 포메이션은 물론이고 전술의 공격 정도와 수비 정도 역시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 이러한 전술들은 대게 감독들이 추구하는 철학과 스타일에 따라서 팀마다 다르며, 선수와 팀의 스타일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한다. 따라서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최소화하여 가장 알맞은 전술을 찾는 게 중요하다.
지난밤 우리 대표팀이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조지아와 평가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사실 형편없었다. 전반전에는 잦은 실수를 범하며 조지아에게 여러 차례 기회를 내주었고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후반전에는 교체를 통해 조금이나마 나아지긴 했으나 결코 만족할만한 경기력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날 대표팀의 저조한 경기력의 원인으로 뽑고 싶은 건 가장 먼저 전술적 선택이다.
벤투 감독은 이날 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예상외로 안정보다는 실험을 선택하며 스리백 전술 속에서 구성윤, 박지수, 백승호, 이강인 등 A매치 데뷔전 혹은 2번째 출장하는 선수들을 선발로 출전시키는 모험을 선보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날 벤투 감독의 전술적 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득점과 실점을 떠나서 대표팀은 잦은 패스 미스를 남발하며 빌드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공격진들끼리 호흡도 전혀 맞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수비에서 계속해서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왜 굳이 스리백을 사용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조지아가 원톱으로 나온 걸 생각하면 스리백의 효율성은 더 떨어졌다.
한국 vs 조지아 선발 라인업
대표팀은 이날 권경원, 김민재, 박지수를 스리백으로 내세우고 앞에는 백승호를 원 볼란치로 세웠다. 하지만 이전 경기들과는 다르게 우리 대표팀의 빌드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고, 더불어 수비 불안까지 늘어났다. 후방에 3명의 수비를 두면서 수비 시에 수적 우위를 가져가고 후방 빌드업이 원활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앞선에 있는 백승호가 상대의 강한 압박에 흔들리면서 전방으로 볼배급은 물론 스리백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지아의 강한 전방 압박으로 빌드업에 고전한 백승호
백승호는 아무리 공격적인 재능은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수비력이 떨어지는 만큼 혼자서 빌드업과 수비 가담을 모두 해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이날 같이 상대의 강한 압박이 들어온다면 부담감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는다. 더욱이나 백승호 앞선에 위치한 권창훈과 이강인은 수비보다 공격적인 임무를 맡아온 선수들이기에 밑으로 계속 내려와 백승호를 도와주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여기에 양측 윙백들 역시 연계 플레이가 원활하지 않은 만큼 빌드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특히 오른쪽 윙백으로 나선 황희찬은 밑으로 내려와 공을 받아주기보다는 높은 위치에 머무르면서 수비 가담도 부족했다.
실제 이날 대표팀을 살펴보면 백승호는 상대의 압박에 휘둘리고, 양측 윙백들 역시 라인 간격이 벌어지자 후방에서 세 명의 수비수들끼리 볼을 돌리다가 결국 롱볼로 전개하거나 무리한 패스를 시도하다가 끊기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이날 전반전에 평균 점유율을 53%:47%로 우위를 가져갔어도 공격 점유율에서는 24%:76%로 압도적으로 밀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나마 중앙에 있는 권창훈과 이강인이 후방으로 내려와 공을 받으면서 풀어 나오고자 했지만, 이 역시 상대의 강한 압박을 이겨내지 못해 한계가 있었다. 권창훈이 공을 빼앗기고 실점한 상황도 백승호를 지원하러 내려갔다가 압박을 벗겨내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황희찬의 부족한 수비 가담으로 생긴 스리백의 불안함
여기에 앞서 말한 대로 황희찬의 수비 가담이 부족하다 보니 스리백에서 우측 수비수로 나선 박지수가 측면까지 커버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자연스레 중앙 수비수들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조지아의 공격은 더 활기를 찾았다. 또한, 후방만 아니라 전방에서도 선수들의 간격이 계속 벌어지면서 공을 잡았을 때 지원 움직임이 부족했고, 당연히 원활한 공격 전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스리백 전술에 계속해서 실패한 대표팀
대표팀이 스리백 실험을 실패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과 지난 6월 호주 평가전에서 스리백을 활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이번과 마찬가지로 수비의 불안감은 상당했고, 빌드업 역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결국 세 차례의 스리백 실험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진전이 전혀 없는 만큼 우리 대표팀에 스리백 전술은 맞지 않는 옷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다양한 전술을 갖추고 있으면 상대의 변화에 따라 우리도 변화를 주면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고, 세계 무대에서도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놓고 봤을 때 대표팀이 스리백 전술을 활용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스리백 전술은 확실한 윙백 없이 소화하기 어려운 전술로 꼽히는데 특히 벤투 감독의 전술 특성상 연계 플레이가 능숙한 풀백이 필요하지만, 우리 대표팀에는 이런 자원이 부족하다. 또한, 후방에서 유연하게 빌드업을 해주면서 수비까지 안정적으로 더해줄 수 있는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 자원 역시 부족하다.
다시 말해, 대표팀은 세계 무대에서 먹힐 수 있는 스리백 전술을 구사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물론 전술을 구상하고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일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고, 하루아침에 모든 걸 이룰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스리백은 대표팀에 맞지 않기에 그보다는 포백에서 다양한 전술 변화를 시도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대표팀은 10일 투르크메니스탄과 경기를 시작으로 월드컵 2차 예선에 돌입한다. 대표팀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여 아시아 강호의 모습을 다시 재연하면서 동시에 집중력을 되찾아 좋은 경기력을 펼치기를 응원한다.
글=강동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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