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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 무대를 누비다가 최근 울산 유니폼을 입으면서 K리그로 리턴한 이청용이 엄청난 이슈를 모으면서 K리그 선수 중 과거 유럽 5대 리그에서 활약했던 선수에 대한 관심도가 늘어났다. 유럽 5대 리그에서 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도전 끝에 다시 K리그로 돌아온다는 선택 역시 어렵다는 점에서 그들을 향한 관심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유럽 5대 리그를 경험했다가 다시 K리그로 돌아온 국내 선수는 누가 있을까? *총 3편으로 연재했으며, 해외 진출 시기를 기점으로 차례대로 연재했고 현재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만 다뤘습니다.



이동국


이동국 (2000년 진출 / 브레멘, 미들즈브러)


1998년 혜성같이 등장하며 데뷔 시즌 11골을 기록하면서 존재감을 알린 이동국은 K리그의 대표적인 골잡이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이동국은 데뷔 3시즌째 되던 해 분데스리가의 베르더 브레멘 임대로 해외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고, 이동국은 7경기(121분) 출전에 그치면서 실패를 맛보고 K리그로 돌아왔다.


이후 상주와 포항에서 재기한 이동국은 두 번째 해외 진출에 도전했고, 2007년에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일궈냈다. 이동국은 당시 한국인 4호 프리미어리거 칭호를 달고 미들즈브러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도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K리그에서 바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했던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적응 문제를 비롯하여 경기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면서 18경기 동안 2득점에 그쳤다. 결국 팀과 상호 계약을 해지하면서 또다시 씁쓸한 실패를 겪고 K리그로 돌아왔다.


다행히 국내 복귀 후에는 전북 왕조의 일원으로서 맹활약하며 이동국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지난 시즌 K리그 역사상 최초로 통산 공격포인트 300개를 달성했고, 여전히 리빙 레전드로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쉽게도 유럽 무대에서는 실패를 맛봤지만, K리그 내에서만큼은 위엄을 자랑하는 공격수다.


박주영


박주영 (2008년 진출 / AS모나코, 아스날, 셀타비고, 왓포드)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축구천재’ 칭호를 얻으며 국내외 여러 팀으로부터 주목받았던 박주영은 2005년 서울에 입단 이후 주가를 올리기 시작했고, 2008년 리그앙의 AS모나코에 입단하며 해외 진출을 이뤄냈다. 박주영은 첫 시즌부터 5득점을 기록하며 입지를 넓혀 나가더니 이후 2시즌 동안 9득점 6도움, 12득점 1도움으로 팀 내 핵심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여러 클럽들의 오퍼를 받았고, 끝내 세계적인 명문 구단 아스날로 이적을 선택하면서 역대 한국인 9호 프리미어리거로 등극했다. 그러나 기회를 얻지 못한 박주영은 1군 무대에서 단 7경기(310분) 출전에 그치면서 완전히 실패를 맛봤다. 이후 셀타비고, 왓포드 임대 생활을 거치면서 재기를 노려봤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끝내 과거 찬란했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 박주영은 유럽 무대를 청산하고 사우디 리그를 거쳐 K리그 복귀를 선언했다.


친정팀 서울로 돌아온 박주영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팀 내 핵심 멤버로 뛰어오면서 팀 역사상 14번째 통산 200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 시즌 통산 300경기와 최다득점 3위에도 도전한다. 한 번의 선택이 축구 인생의 큰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박주영은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다.


이청용


이청용 (2009년 진출 / 볼턴, 크리스탈 팰리스, 보훔)


2006년 만 17세 나이에 1군 무대 데뷔한 이후 이청용은 본격적으로 차세대 에이스로 올라섰다. 당시 서울에서 맹활약하며 ‘주목할 만한 유망주’, ‘떠오르는 50인’ 선정되면서 각광을 받았고, 마침내 2009년 볼턴으로부터 정식 오퍼를 받으면서 해외 진출 역사상 최고 이적료(44억 원)를 기록하며 7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이청용은 그야말로 최고의 나날을 보내며, 두 시즌 동안 9득점 17도움을 기록하면서 팀 내 핵심선수로 올라섰다. 그러나 2011-12시즌을 앞두고 프리시즌 경기에서 다리가 골절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걸었다. 불행 중 다행히 2015년 겨울 크리스탈 팰리스가 불러주면서 프리미어리그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확실히 예전만큼 임팩트가 없었고, 간간이 출전하면서 활약을 이어나가긴 했으나 팀 내 입지를 잃으면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후 보훔으로 이적하면서 분데스리가에 도전해 두 시즌 동안 1득점 6도움의 기록을 남겼지만,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은 가운데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K리그 복귀를 선언, 울산과 계약을 맺으면서 11년 만에 K리그로 돌아왔다. 올 시즌부터 ‘블루드래곤’ 이청용을 K리그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정조국


정조국 (2011년 진출 / 옥세르, 낭시)


2003년 데뷔 이후 8시즌 동안 서울에서 주축 공격수로 활약해온 정조국은 2011년 1월에 해외 진출에 도전했다. 프랑스 리그앙의 옥세르가 그 첫 팀이었다. 하지만 정조국의 도전은 기대했던 것보다 확실히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첫 시즌이었다는 위안을 삼으려고 해도 16경기(328분) 출전에 그쳤다.


이에 정조국은 유럽 무대에서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기회를 찾아 나섰다. 그게 바로 낭시로의 임대 이적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21경기(497분) 출전에 그쳤고, 오히려 벤치에 앉는 시간이 더 많았다. 사실상 해외 무대에서 도전을 지속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 셈이었다. 결국 임대 복귀 후 옥세르와 계약 해지하면서 무소속 신분이 된 정조국은 군 복무 문제로 국내로 돌아왔다. 정조국의 해외 무대 도전은 37경기 4득점 3도움으로 막을 내렸다.


K리그 복귀 이후 정조국은 서울을 거쳐 경찰청에서 뛰면서 부활을 알렸다. 이후 광주, 강원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올 시즌부터는 남기일 감독과 재회하면서 제주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다.


글=강동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AS모나코 공식 홈페이지, 볼턴 원더러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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