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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원클럽맨 레전드이자 왼발의 마술사 라이언 긱스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로 프리미어리그가 중단된 가운데 팬들을 위해 색다른 콘텐츠를 준비했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역대 최고의 활약을 선보인, 프리미어리그를 상징하는 선수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프로 통산 단 한 번의 퇴장도 당하지 않은 레전드, 프리미어리그 통산 역대 최다 도움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맨유를 상징하는 역대 최고 원클럽맨.


라이언 긱스는 1990년 프로 데뷔 이후 2014년까지 무려 24년간 선수 생활을 이어오면서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했던 윙어다.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맨유 팬들에게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으며, 과거 맨유의 영광을 회자하면 항상 언급되는 선수다.


퍼기의 아이들 중 한 명이었던 라이언 긱스


'퍼기의 아이들'로 등장을 알린 소년


긱스는 맨유 유소년 출신이자 일명 '퍼기의 아이들' 중 한 명이다. 1987년 맨유 유소년에 입단한 이후 1990년 만 17세 나이에 1군 무대에 데뷔했고, 이후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맨유 레전드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긱스의 등장은 맨유에 큰 힘이 됐다. 측면에서 파괴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안고 있던 맨유였지만, 혜성같이 등장한 긱스가 곧바로 왼쪽에서 중심축이 되어주었다. 특히 우측에서 중심을 잡아주던 데이비드 베컴과 '좌긱스-우베컴'이라 불리는 라인을 만들어내면서 어마 무시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긱스는 최고의 드리블러라 불릴 정도로 전성기 시절 스피드, 드리블, 기술로는 그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선수였다. 특히 측면에서 과감한 돌파 이후 러닝 크로스의 정확도는 완벽 그 차제였기에 긱스를 막으려는 수비수는 고전의 연속이었다.


이런 긱스는 판단력과 차분함까지 더해지면서 경기를 보는 안목도 뛰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커리어 막바지에 신체 능력이 떨어지면서 측면에서 예전처럼 활약할 수 없자, 중원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플레이메이커로 재탄생을 알렸다. 뿐만 아니라 어린 선수들을 컨트롤하면서 팀의 전반적인 기강을 잡고, 승리를 책임지기도 했다.


프리미어리그 최다 도움 기록을 보유 중인 라이언 긱스


프리미어리그 최다 도움의 영예


긱스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맨유 레전드로서 보여준 엄청난 퍼포먼스는 여전히 잊혀지지 않으며,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았던 명실상부 최고의 윙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최다 도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통산 632경기 출전 109득점 162도움을 올린 긱스는 역대 프리미어리그 도움 1위에 올라있는데, 이 기록은 당분간 쉽게 깨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선수 중에서 다비드 실바가 가장 많은 도움을 올렸는데, 90도움밖에 되지 않으며 올 시즌을 끝으로 떠나기에 가능성은 제로다. 그다음 가능성 있는 선수는 케빈 데 브라이너지만, 이제 62도움이다. 앞으로 100개의 도움을 더 쌓아야 하는 만큼 사실상 향후 4~5년이 지나도 기록을 깨기 어렵다. 긱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다시 엿볼 수 있다. 추가로 긱스는 1996년과 2006년에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기도 했다.


수 많은 우승을 경험한 라이언 긱스


수많은 우승의 영광을 맛본 탑클래스


개인 커리어도 대단했지만, 긱스는 팀적으로도 커리어에서 탑클래스였다. 맨유 소속으로 24년간 뛰면서 긱스가 들어 올린 트로피 개수는 상당하다.


우선 리그만 놓고 세어봤을 때 양 손가락이 모자란 건 당연지사다. 무려 13회나 리그 우승을 함께했다. 여기다 2번이나 빅이어를 들어 올렸고, FA컵 4회, 리그컵 4회, 피파클럽월드컵 1회, 커뮤니티실드 9회로 선수 커리어를 이어나가면서 할 수 있는 우승이란 우승의 영광은 다 맛봤다.


그래도 이 중에서 가장 최고의 우승 시즌은,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큰 몫을 했던 1998-99시즌이다. 맨유 구단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이자 역대 프리미어리그 클럽 최초의 트레블, 유럽 클럽 4번째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보여준 포스와 그 역사는 잊지 못한다. 앞서 말한 '좌긱스-우베컴' 라인이 그때 절정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표팀 커리어가 긱스의 유일한 흠이다.


아쉬웠던 국가대표 커리어


이런 긱스도 아쉬웠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국가대표 커리어다. 긱스는 잉글랜드 대표팀으로부터 국적을 바꾸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애국심을 버리지 못하면서 웨일스 대표팀을 택했다. 하지만 웨일스 대표팀에서 긱스 외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없었고, 전력도 녹록지 못하면서 유럽 무대에서 큰 꿈을 꾸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긱스는 2007년 대표팀을 은퇴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월드컵은 그렇다 쳐도 유로 본선 무대도 밟아보지 못한 셈이다. 그나마 2012년 런던 올림픽 영국 단일팀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면서,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털어낼 수는 있었다.


그리고 선수 시절 못 이룬 꿈을 감독으로서 이뤄내기도 했다. 긱스는 웨일스 대표팀을 이끌고 유로 본선 무대 진출을 이끌었다. 내년에 열리는 유로 2021에 감독으로서 참가할 예정이다.


글=강동훈

사진=게티이미지, 스쿼카, 맨유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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