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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럽맨, 오직 한 구단에서만 프로 생활을 이어온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다른 유니폼을 입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구단의 상징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원클럽맨이 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더 좋은 제안이 들어와도 이에 흔들리지 않고, 데뷔 이후 줄곧 한 팀에서만 뛰어야 하기에 어려움은 배가 된다. 한편 그만큼 어렵지만, 원클럽맨으로 남는다면 그 의미도 클뿐더러 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기 마련이다.


1983년부터 시작된 K리그의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 K리그의 원클럽맨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원클럽맨으로만 놓고 보는 게 아니라 순수 리그 기준 200경기 이상 뛴 원클럽맨은 손에 꼽힌다.


그렇다면 K리그에서 순수 리그 기준 200경기 이상 뛴 원클럽맨은 누가 있을까? 총 4편의 글로 이루어졌으며 연대별로 차례대로 살펴본다. 참고로 의무복무로 군경팀에 소속된 적이 있는 경우는 포함했으며, 단 군경팀 소속 출전기록은 제외했다. 또 해외를 거쳐 다시 돌아온 경우도 포함했다.



공문배


공문배 (1987-1998, 포항 스틸러스, 226경기 출전, 수비수)


1987년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 포항제철 아톰즈에서 데뷔한 이후 공문배는 12년 동안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그는 리그에서만 226경기를 출장하며 포항 역대 원클럽맨 최다 출전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공문배는 1988년과 1992년 두 번의 리그 우승을 함께 했고, 1997년과 1998년에는 현 AFC 챔피언스리그로 개칭되기 이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팀을 2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황선홍, 홍명보, 서효원, 박태하, 유동관, 이영상 등과 함께 황금 멤버를 구축하면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의 진가는 드러난다.


이 밖에 한 차례 FA컵 우승과 리그컵 우승을 달성했으며, 2013년에는 포항의 창단 40주년을 맞이하여 헌액한 명예의 전당 13인에 이름을 올리면서 영원한 레전드로 남았다.


김주성


김주성 (1987-1999, 부산 아이파크, 203경기 출전, 미드필더)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야생마’ 김주성은 1987년 부산 대우 로얄즈의 입단한 이후 잠깐 독일 임대 생활을 제외하면 원클럽맨으로 꼽힌다.


그는 데뷔 시즌에 28경기 10득점을 기록하며 신인답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면서 동시에 신인왕도 수상했다. 1991년에는 37경기 14득점을 기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팀의 세 번째 우승에 공헌했고, 이후 잠깐 독일 분데스리가 VfL 보훔으로 임대 갔다 돌아온 뒤에도 활약은 계속됐다. 특히 그는 1995년부터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팀의 4번째 우승을 안겨주었고, K리그 MVP를 수상하면서 최고의 선수로 남았다.


이 밖에도 김주성은 K리그 베스트11 4회, 아시아 올해의 선수를 3연속 수상하는 대기록을 달성했고, 구단을 떠나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영구결번(16번)의 영광을 얻기도 했다.


윤상철


윤상 (1988-1997, FC 서울, 261경기 출전, 공격수)


‘얼룩 치타’ 윤상철은 1988년 FC 서울의 전신 럭키 금성/안양 LG 치타스에서 데뷔해 줄곧 한 팀에서만 뛰어오며 레전드로 대우받는 ‘원클럽맨’이다.


그는 1990년대 황선홍, 김현석, 서정원, 김도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리그에서만 261경기 92득점 27도움을 기록했다. 여타 내로라하는 공격수들과는 달리 특유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뛰어난 득점 감각과 골키퍼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슈팅 센스로 K리그를 주름잡았다.


1990년에는 30경기 출전 12득점을 넣으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득점왕까지 수상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후로도 1993년 도움왕, 1994년 득점왕, K리그 베스트11 4회, 통산 6번째 30-30클럽 가입 등 최고의 나날들을 보내면서 서울의 레전드로 남았다.


김현석


김현석 (1990-2003, 울산 현대, 292경기 출전, 공격수)


울산 현대의 레전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찾는 선수는 바로 김현석이다. 1990년에 울산에서 데뷔해 2003년까지 리그 292경기를 뛰었고 79득점 43도움을 기록했다.


김현석은 1990년대 K리그 공격수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는데, 그는 1996년 K리그 MVP, 1997년 K리그 득점왕, K리그 베스트11 6회, K리그 최초 50-50클럽 달성 등 개인적인 영광과 1996년 리그 우승, 1995년, 1998년 리그컵 우승 등 울산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비록 2000년에 J리그의 베르디 가와사키로 잠깐 건너가면서 순수 원클럽맨이라 불리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1년을 제외하면 줄곧 울산을 위해서만 뛰어왔으며 최다득점 기록을 계속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는 영원한 울산의 원클럽맨 레전드다.


글=강동훈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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