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거 감독은 22년을 함께 했던 아스날과 이별을 선언했다.
벵거 감독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아스날과 이별을 선택했다. 벵거 감독은 한국시간으로 20일 아스날 홈페이지를 통해 "구단과 논의해 올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나도 지금이 떠날 적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아스날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었고 특권이었다."라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매번 맞대결을 할 때마다 치열한 신경전을 보여주었던 무리뉴 감독은 막상 벵거 감독이 아스날을 떠난다고 하자 "나는 벵거를 항상 존경해왔다. 그가 축구계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과르디올라 감독도 "벵거 감독의 업적에 찬사를 보낸다. 그가 있어서 프리미어리그가 발전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며 벵거 감독을 감싸 안았다.
아스날에서 영원히 있을 줄만 알았던 벵거 감독이 떠난다는 게 참 어색하다. 1996년에 아스날 감독직에 취임하여 22년 동안 지휘봉을 잡아 온 벵거 감독. 22년이라는 시간. 상당히 긴 시간이기에 많이 아쉬운 이별이다. 아스날 팬들은 최근들어서 저조한 성적과 우승에 목이 말라 경기마다 '벵거 아웃'이라는 피켓, 플랭카드를 내걸면서 벵거 감독을 비난했다. 하지만 막상 벵거 감독이 정말로 떠난다고 하니 아쉬워하면서 그동안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홈 팀 감독 석에서 벵거 감독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스날 감독직에 부임한 벵거 감독의 모습
벵거 감독이 아스날의 지휘봉을 잡은 건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스날은 벵거 감독이 부임하기 이전에 수많은 스캔들과 뇌물 파문, 선수들의 음주 파문 등에 심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구단은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고 과거의 영광에만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그나마 당시 아스날에는 눈에 띄는 혁명적인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데이비드 딘 부회장이다. 딘은 새로운 감독을 찾던 중, 과거에 인연을 맺은 벵거 감독에게 함께 하자는 제의를 했다. 물론 처음부터 벵거 감독을 바로 데려오는 건 힘들었다. 딘은 벵거 감독을 적극 추천했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래도 외국인 감독에다가 당시 아스날 선수단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구단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하지만 고심끝에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벵거 감독을 선임하는 모험을 걸었다.
벵거 감독이 아스날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잉글랜드 전역의 분위기는 이전과 조금 상반되었다. 우선 잉글랜드 리그에 외국인 감독이 드물었고 언론과 팬들도 외국인 감독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벵거 감독을 아는 이는 더욱 없었고 의구심만 가득했다. 당시 벵거 감독 선임 후 반응을 살펴보면 "무슨 생각으로 저 프랑스 감독을 선임했을까?", "저 프랑스 감독이 아스날을 잘 이끌 수 있을까?", "아르센은 누구야?" 등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벵거 감독은 이런 역경을 자신의 지도방식을 통해 헤쳐나갔다. 물론 초기에는 벵거 감독도 애를 먹었다. 당시 아스날 선수들은 벵거 감독이 새로 부임해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 본인들의 방식대로 계속 생활을 해나갔다. 그렇기에 벵거 감독은 이전까지 엉망이었던 팀의 기강을 비롯해 훈련방식, 선수 관리 등을 새롭게 바꿔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벵거 감독의 노력이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아스날 선수들이 벵거 감독의 전술, 훈련, 문화방식 등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히려 아스날 선수들은 이전 감독들보다 효과적이라면서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다.
1998년 더블을 달성한 아스날
특히 선수들이 벵거 감독을 잘 따른 이유는 훈련 시에 직접 선수들과 함께 뛰고 움직이면서 지도한 점, 훈련이 끝나고 나서 식단관리에도 직접 나서면서 선수들을 면밀히 관리한 점 그리고 선수단에 있는 모든 선수들을 일일이 챙겼다는 점이다. 선수들이 힘들거나 경기력이 떨어지면 상담도 해주고 계약 문제에도 직접 나서서 구단과 협상에 나섰다는 부분에서 선수들은 벵거 감독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 이렇게 아스날은 벵거 감독 밑에서 다시 변해갔고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스날은 벵거 감독 부임 1시즌 만에 리그와 FA컵 우승을 들어 올리면서 '더블'을 달성했다. 벵거 감독을 선임한 아스날의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벵거 감독은 외국인 감독 최초로 리그 우승을 들어 올리는 영예를 얻었다. 바로 이 시점부터, 잉글랜드 프로팀들은 외국인 감독을 임명하기 시작했고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벵거 감독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부단한 노력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생각된다. 벵거 감독의 지도방식이 잉글랜드 전역에 퍼질 정도로 새로운 유행을 이끌어냈으니 이걸로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게다가 팬들도 벵거 감독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언론도 벵거 감독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3-04시즌 무패우승을 달성한 아스날은 그야말로 최강이었다.
벵거 감독과 아스날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도 무패우승이다. 벵거 감독도 본인이 이끌었던 최고의 팀을 무패우승을 달성한 팀으로 뽑고 있다. 아스날은 2003-04시즌 리그에서 38경기를 치르는 동안 26승 12무를 기록하면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 번도 패하지 않으면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였고 벵거 감독의 지도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아스날의 수비는 견고했고 미드필더는 창의적이었으며 공격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당시 아스날의 스트라이커 앙리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선수였다.
역사적인 무패우승을 뒤로하고 아스날은 주축 선수들이 한두 명씩 떠나면서 프리미어리그 우승과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아스날이 퇴보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그라운드의 진정한 리더의 부재가 가장 컸다. 벵거 감독이 부임한 뒤로 아스날의 황금기에는 리더십 강한 선수들이 늘 있었다. 1998년 더블을 달성했을 때는 토니 아담스, 무패우승을 달성했을 때는 패트릭 비에이라가 그라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이후 앙리, 파브레가스, 반 페르시, 아르테타 등이 주장계보를 이어왔지만 별로 좋지 못했다. 더군다나 앙리, 파브레가스, 반 페르시는 주장직을 수행하던 중 팀을 떠나면서 팀원들과 팬들을 실망시켰다. 주장은 기본적으로 팀을 위해 헌신하고 그라운드에서 강인한 모습을 통해 팀원들의 사기를 높여야한다. 하지만 아스날은 비에이라 이후로 지금까지 리더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퇴보의 또 다른 이유는 변하지 않는 영입 철학이다. 아스날은 돈을 안쓰기로 유명하다. 과거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건설하면서 재정적으로 큰 위기가 있었지만, 아스날은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클럽이자, '빅4' 이다. 필요하다면 빅 네임을 영입해서 우승에 계속 도전해야한다. 하지만 벵거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선수 영입에 있어서만큼은 확고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벵거 감독은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값싸게 영입하여 키워서 기용하는걸 선호하고 쓸떼없이 큰 돈을 들여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철학 때문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선수를 영입하고 스쿼드를 보강하는 경쟁 팀들에게 밀려 리그 우승은 더욱 멀어져갈 수 밖에 없었고 그 시간이 벌써 14년이나 지났다. 물론 중간에 메수트 외질, 알렉시스 산체스 그리고 가장 최근에 피에르 오바메양까지 나름의 빅 네임 영입이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과거 우승시절과 비교했을 때, 스쿼드의 무게감에서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축구는 결과를 내야하는 스포츠이다. 벵거 감독의 철학대로 유망한 선수를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우승을 위해서라면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법이다. 비록 이제는 아스날을 떠나지만 벵거 감독의 철학이 아스날을 퇴보시킨 셈이다.
알레그리 감독은 벵거 감독 후임으로 가장 언급이 많이 되고 있다.
벵거 감독의 후임으로 떠오르는 감독으로는 알레그리, 안첼로티, 엔리케, 투헬, 나겔스만, 에디 하우, 비에이라, 아르테타 등이 있다. 일단 예전부터 계속 아스날 감독 후보에 올랐던 알레그리 감독은 이탈리아의 대표적 전술가로서 확실한 성적을 보장한다. 다만 이탈리아 무대 이외에는 아직 경험이 없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히지만, 충분히 벵거 감독의 후임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이다. 유럽 무대에서 잔뼈가 굵고 첼시 감독직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경험도 해본 안첼로티 감독도 매력적인 카드이다. 지난해 9월 바이에른 뮌헨에서 저조한 성적으로 경질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직까지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건재하다고 판단된다.
2014-15시즌 바르셀로나를 이끌고 트레블을 달성한 엔리케도 차기 아스날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선수빨'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지만 보유한 선수들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줄 아는 감독이다. 과거 바르셀로나에서 디렉터로 지냈던 라울 산레히가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선보인 투헬 감독은 어린 유망주를 성장시키며 팀을 완성시키는 점이 벵거 감독과 많이 닮았다. 바이에른 뮌헨과 파리 생제르망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떠오르는 신예 감독들도 후보에 올라있다. 가장 먼저 젊은 감독 중 1순위는 호펜하임의 나겔스만 감독이다. 만 31세밖에 안 된 나겔스만 감독은 분데스리가의 새로운 전략가로 등극했다. 전술적인 역량은 기존의 감독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본머스를 이끌고 있는 하우 감독도 만 41세로 어린 감독에 속한다. 2015년 본머스의 사상 첫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이끈 하우 감독은 잉글랜드에서 천재 감독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매력적인 패스 축구는 벵거 감독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벵거 감독의 제자였던 비에이라와 아르테타도 유력한 후보이다. 아스날에서 뛰면서 벵거 감독의 축구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아스날의 축구를 이어갈 후임으로 손색이 없다. 다만 둘 다 아직은 지도자 경력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비에이라는 뉴욕시티에서 3년째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큰 성적을 내지 못했으며 MLS 말고는 다른 리그에서 경험도 없다는 게 흠이다. 아르테타는 맨시티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을 보좌하고 있는데 아직은 감독경력이 없어 곧바로 아스날 감독을 맡기에는 위험부담이 있다.
벵거 감독을 뒤이어 아스날을 이끌 새로운 감독이 누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벵거 감독이 쌓아온 업적을 이어간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감과 어려움이 작용할 것이다. 그만큼 벵거 감독이 22년 동안 아스날을 이끌면서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는 증거이다. 비록 마지막은 좋지 않게 마무리했지만 벵거 감독은 역대 명장으로 손꼽힐 만큼 존경받아 마땅한 감독이다.
글=강동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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