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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볼을 새롭게 이끌 파브레가스


대부분의 감독은 새로운 팀으로 자리를 옮기면 이전 팀에서 함께 하면서 본인의 전술을 잘 이해했던 선수들을 데려오고 싶어 한다. 물론 선수 개인의 의사, 보드진의 판단, 이적료 협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데려올 수만 있다면 새로운 팀에서 본인의 전술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수월해진다. 그런 이유에서 사리 감독이 첼시 감독직을 수락할 당시 구단에 가장 먼저 요청한 건 "조르지뉴 영입"이었다. 아무래도 나폴리 시절 사리 볼에서 핵심선수는 조르지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조르지뉴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중앙에서 패스를 공급해주면서 점유율 축구를 시행하는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부족한 수비력과 순발력 및 스피드 때문에 프리미어리그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지난 25일 토트넘전이 그랬다. 손흥민의 스피드가 워낙 빠르고 돌파력이 뛰어나서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당시 조르지뉴는 손흥민을 수비해내지 못했고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결국 사리 감독은 부진한 조르지뉴를 대신해 이날 유로파리그에서 파브레가스를 선발로 내세웠다. 로테이션을 통한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생각한 면도 있겠지만, 사리 감독은 파브레가스를 계속 실험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더 강했다. (최근 파브레가스는 리그에서 시즌 초반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확실히 프리미어리그에서 다년간 뛰면서 풍부한 경험과 실력이 있는 파브레가스가 최근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조르지뉴를 대체할 수 있어 보였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파브레가스는 이날 양 팀 통틀어서 두 번째로 높은 평점을 기록했다. 두 골을 넣은 지루보다도 높은 평점이었다. 두 개의 어시스트가 높은 점수를 받는데 어느 정도 작용을 했지만, 그보다는 경기 전체를 조율하면서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최고의 모습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후방에서 찔러주는 침투 패스는 두말할 필요 없을 정도였다. 흔히들 많이 쓰는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이날 파브레가스에게 딱 적합했다. 예전보다 기량이 많이 저하 됐지만, 클래스는 팀 내 최고였다. 이날 파브레가스는 과거 그라운드를 지휘했던 마에스트로가 다시 돌아왔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다.


파브레가스는 이날 첼시의 중원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사실 이런 파브레가스는 올 시즌 출발이 좋지 않았다. 사리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본인이 가장 아끼던 조르지뉴를 데려왔고, 코바시치까지 임대로 영입하면서 본인이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캉테, 바클리, 드링크워터, 로프스터 치크와의 경쟁도 치열한데, 2명의 선수가 추가되었으니 당연했다. 그래도 사리 감독이 점유율 축구를 선호하기 때문에 과거 스페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에서 뛰면서 점유율 축구에 능숙한 점을 떠올렸다면 파브레가스가 경쟁에서 우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리 감독의 판단은 냉정했고 파브레가스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파브레가스는 첼시에서 계속 머무르기를 희망했고, 출전기회가 있을 때마다 본인의 진가를 드러냈다. 비록 나이가 들면서 스피드가 떨어지고 수비력이 많이 부족했지만, 다년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노련하게 경기를 풀어나갔고 중요할 때마다 경기의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패스 한방으로 팀을 이끌어 나갔다. 올 시즌 파브레가스는 조르지뉴가 리그에서 중용을 받게 되자 리그컵과 유로파리그에서 주로 모습을 드러냈다. 종종 조르지뉴와 교체되서 리그 경기를 짧게 소화하기도 했다. 파브레가스는 출전할 때마다 기회를 잘 살려냈고 스스로 부진을 조금씩 극복해 나갔다. 조르지뉴와 놓고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파브레가스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잘 수행해냈고 동료들과도 좋은 연계플레이를 선보였다.

조르지뉴와 파브레가스의 경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두 선수의 경쟁은 불가피하고 함께 경기에 나서는 건 더더욱 보기 힘든 장면이다. 실제로 올 시즌 두 선수가 함께 출전한 경기는 맨시티와의 커뮤니티 실드전 딱 한 번이었고 나머지는 로테이션을 통해 조르지뉴는 리그에서 파브레가스는 리그컵과 유로파리그에서 기회를 잡고 있다. 이는 사리 감독의 전술체계를 보면 두 선수가 왜 공존하기 어려운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사리 감독은 나폴리 시절부터 4-3-3 포메이션을 사용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플레이메이커 역할의 선수를 기용하고 남은 두 자리에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수비와 공격 둘 다 지원할 수 있는 선수를 배치해 왔다. 여기서 사리 감독이 가장 핵심으로 두는 선수가 바로 역삼각형의 꼭짓점 역할을 하는 선수이다. 사리 감독은 수비력이 부족하더라도 볼을 잘 간수하면서 연계를 잘하는 미드필더를 역삼각형의 꼭짓점에 두면서 전술을 운영해왔다. 이는 첼시에 와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기존에 첼시에는 패스 연계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파브레가스가 있었고, 여기에 사리 감독이 데려온 조르지뉴가 새롭게 가세했다. 두 선수 모두 수비력 측면에서는 떨어지지만, 중앙에서 패스를 공급해주는 역할에서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사리 감독의 전술적인 측면(포메이션과 스타일)을 고려해봤을 때, 두 선수가 함께 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한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야만 했고, 나폴리 시절부터 사리 감독과 함께해온 조르지뉴가 1순위로 낙점을 받게 되었다.

파브레가스와 조르지뉴의 올 시즌 주요스탯 비교


하지만 올 시즌 두 선수의 기록을 놓고 비교해 봤을 때, 파브레가스는 생각 이상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기록 면에서 조르지뉴보다 더 나았다. 두 선수의 출전 수 및 시간을 놓고 봤을 때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비교는 적절하지 않지만, 올 시즌 파브레가스가 얼마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하게 비교해봤다. (비교는 프리미어리그, 유로파리그, 리그컵 기록을 기준으로 했으며, 오늘 새벽에 열린 유로파리그 경기까지 포함했다.) 기록을 살펴보면, 파브레가스는 출전기회와 시간이 한참 적었지만, 조르지뉴보다 공격포인트에서 앞섰고 패스 성공률과 키패스 부분에서도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중원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경기를 조율했으며, 패스 한방으로 팀의 공격을 활발하게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파브레가스는 리그보다 유로파리그와 리그 컵을 위주로 경기를 치러서 전력상으로 다소 약한 팀들을 상대한 건 맞지만, 리그컵에서 리버풀과의 맞대결이 있었고 유로파리그 같은 조에 속한 PAOK는 그리스 슈퍼리그 1위 팀으로 쉬운 상대만 있었다는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직은 충분히 경쟁력 있고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라고 볼 수 있다.

사리 감독은 전술에 변화를 줄 필요성이 있다.


맨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조르지뉴는 경기력이 많이 저하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부진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리그에서 매 경기 선발 출전한 조르지뉴는 체력적으로 지치는 모습을 보였고, 최근에는 집중 견제를 당하면서 맨마킹으로 붙는 상대의 압박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중원에서 패스연계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비에서는 상대 공격수들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사리 감독은 조르지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파브레가스에게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주어야 한다. 물론 파브레가스도 예전부터 부족한 수비력으로 비난을 받아왔지만, 지난 시즌 수비력을 보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탈압박 능력이 뛰어나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다년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파브레가스가 사리 볼을 더 유연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여기에 지난 시즌 파브레가스와 많은 호흡을 맞춰본 캉테를 지금 위치보다 밑으로 내려서 같이 기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올 시즌 캉테는 지난 시즌보다 높은 위치에서 뛰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캉테의 위치가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캉테는 뛰어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폭넓은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수비력이 좋은 선수이다. 캉테를 백 포라인 앞에 놓고 파브레가스 혹은 조르지뉴와 함께 나선다면 수비도 개선되고 연계 측면에서도 나아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4-3-3 포메이션을 계속 고집하기보다는 4-2-3-1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가져가자는 이야기이다. 물론 사리 감독의 전술적인 철학을 존중하지만, 사리 볼이 나아지고 한단계 더 발전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아직 첫 시즌이기에 시간을 갖고 기다려볼 필요는 있지만,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변화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 파브레가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그와 호흡을 많이 맞춰본 캉테를 수비적으로 기용하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최종적으로 선수기용 및 전술은 감독의 권한이다. 다만 파브레가스가 이전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파브레가스라면 충분히 첼시가 후반기에 우승권 경쟁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팀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남은 시즌 동안 파브레가스 활약 그리고 첼시의 더 좋아진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강동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첼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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