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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도나, 향년 60세 심장마비로 별세

▲ 마라도나, 커리어 통산 694경기 354골

▲ 마라도나, 역대 월드컵 최다 도움(8회) & 최다 피파울(152회) & 최다 드리블 돌파(105회)

▲ 마라도나, 나폴리 역대 최다 득점 3위(115골) & 10번 영구결번

▲ 나폴리, 마라도나 뛰던 시절 리그 우승이 처음이자 마지막


세계 축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올타임 넘버원으로 항상 거론되던 레전드 디에고 마라도나가 향년 60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아르헨티나 언론 'TyC Sports'는 26일(한국시간) "디에고 마라도나는 뇌수술을 받고 퇴원한 뒤 자택에서 회복하던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의료진이 투입됐지만,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그의 가족들은 마라도나의 소식을 통보받았다."라고 보도했다.



마라도나가 누구인가? 세계적인 축구 레전드이자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1976년 불과 16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프로 무대에 데뷔해 1997년 은퇴하기 전까지 21년간 커리어 통산 694경기 354골을 넣으면서 축구 역사를 되돌아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거론될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


먼저 마라도나는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1군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곧바로 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5년 동안 총 166경기 116골을 기록했다. 특히 1978년 리그에서 22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고, 1979년과 1980년에는 자국 양대 리그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18살 나이에 팀의 주장을 역임하면서 리그 최우수 선수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런 활약상 속에 마라도나는 1981년 아르헨티나의 축구 명문 클럽 보카 주니어스를 거쳐 1982년 당시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적,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그는 이적과 동시에 위상을 떨쳤다. 2시즌 동안 58경기 38골을 기록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렸으며, 무엇보다도 '엘클라시코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에서 역사상 6번밖에 없는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다만 사생활 문제로 물의를 빚은 그는 스페인에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탈리아 세리에 무대로 옮긴 가운데 나폴리 유니폼을 입은 마라도나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으며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마라도나는 이적 후 첫 시즌부터 17골을 뽑아내며 팀의 득점을 책임진 데 이어 6시즌 동안 98골을 터뜨리며 에이스로서 위상을 떨쳤다. 이 기간에 그는 나폴리에 리그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등 우승을 안겨주며 팀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렸다. 나폴리는 마라도나가 합류하기 전만 하더라도 중하위권에 위치한 팀이었으며, 내세울 만한 우승 커리어는 전무했다. 오히려 강등권을 오갈 정도로 리그 내에서 약체로 꼽혔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합류하면서 완전히 달라진 셈.


게다가 나폴리는 구단 역사상 리그 우승 2회가 전부이다. 다시 말해 마라도나가 활약하던 시절에 들어 올린 리그 우승 트로피가 처음이자 마지막 리그 우승컵이었던 것이다. 마라도나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감할 수 있다. 실제 마라도나는 나폴리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 3위(115골)에 올라있다. 1위 드리스 메르텐스와 2위 마렉 함식보다 더 적은 경기를 뛴 걸 고려하면 그의 득점력이 얼마나 빼어난 기록이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이에 나폴리는 마라도나가 달았던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등 레전드로서 최고의 대우를 했다.



마라도나의 활약은 단순히 클럽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그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건 대표팀에서 보여준 활약에 있다. 아르헨티나의 영웅이라 불릴 정도로 대표팀에서도 매번 에이스 역할을 도맡으며 팀의 전성기를 이끈 그는 1978년 A대표팀에 데뷔한 이후 서서히 출전 기회를 부여받으며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 출전한 데 이어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1986년 월드컵은 '마라도나 월드컵'이라 불릴 만큼 역대 월드컵을 중 가장 단 한 명에게 주목이 쏠린 월드컵이었다. 당시 마라도나는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7경기에서 5골을 터뜨리며 조국에 월드컵 우승을 안겨줬다. 8강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신의 손 논란이 있었음에도 그의 활약은 상당했기에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실제 이는 그의 기록에서 나타난다. 당시 마라도나는 대회 통틀어 최다 득점 2위에 올랐으며, 도움 5개(최다), 드리블 돌파 53회(최다), 키패스 27회(최다), 피파울 53회(최다)를 기록했다. 당연히 월드컵 최우수 선수는 마라도나에게 돌아갔다.



비단 1986년 멕시코 월드컵뿐만이 아니다. 그는 4번의 월드컵(1982년, 1986년, 1990년, 1994년)에 참가한 가운데 역대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도 전설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우선 그는 역대 월드컵 최다 피파울 1위, 2위, 3위를 모두 차지했다. 앞서 말한 1986년 53회로 1위에 올랐으며, 1990년 50회와 1982년 36회로 그 뒤를 이었다.



여기에 더해 공식적으로 기록을 하기 시작한 1966년 이래로 마라도나는 월드컵 통산 도움 8회(최다), 피파울 152회(최다), 드리블 돌파 105회(최다)를 달성했다. 주장 완장을 달고 최다 경기(16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실로 대단한 기록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마라도나가 선수 시절 마약 스캔들로 논란을 빚었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선 도핑검사에선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앞두고는 "나폴리 시민들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나와 아르헨티나를 응원해야 한다."라는 발언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는 등 논란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가 선수 시절에 보여준 화려한 드리블, 천재성이 번뜩이는 패스, 날카로운 킥과 빼어난 득점력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하기에 여전히 그가 올타임 넘버원으로 거론되면서 여전히 축구 팬들이 그의 과거 플레이에 감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제 더는 마라도나를 볼 수는 없겠지만, 그는 전 세계 축구 역사에 길이 남는 전설로 기억될 것이다. 끝으로 축구계의 레전드 마라도나가 그동안 보여준 모습에 감사하며, 그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한다.



글=강동훈

사진=BR Football, TyC Sports, 스쿼카, 옵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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